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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한마음한몸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제6탄

admin | 2018-04-06 | 조회 1297

기획특집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몸] (6)

국제협력(상)‘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빈곤에 고통받는 지구촌 형제 도우며 자립의 꿈 심어줘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 [1459호] 2018. 04. 08발행, 오세택 기자

기사 원문 바로가기 >>> https://bit.ly/2uPt6Ld
 
▲ 지난 2005년 11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령 잠무카슈미르 등지에 지진이 발생, 이재민들이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지원한 텐트에서 한겨울을 나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제공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바뀐 사례가 있을까? 그런 경우는 단 한 나라밖에 없다. 바로 우리나라다. 한국의 해외 원조는 그래서 눈물겹다. 때로는 일종의 ‘빚 갚기’ 같은 색깔을 띠기도 한다. 6ㆍ25 참전국에 대한 원조가 그 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을 마지막으로 피원조국에서 벗어나기까지 선교사들의 원조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었다. 100년도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선교사들을 파견한 지역 교회의 원조로 성당을 세우고 가난한 하느님 백성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그랬기에 한국 교회는 1992년 10월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해외 원조를 공식 결정하고, 이듬해부터 원조를 시작했다. 올해로 꼭 해외원조를 한 지 25주년을 맞는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이에 앞서 매끼 한 줌의 쌀을 절약해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가난한 이웃을 돕자는 ‘헌미’ 방식으로 기금을 모아 국제협력을 시작했고, 올해까지 30년째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며 국제협력에 힘을 쏟고 있다.

▲ 지난 2006년 2월 당시 국제협력팀장이던 김대민(오른쪽) 차장이 파키스탄 아자드 잠무 카슈미르의 ‘희망의 집짓기’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해외 원조, 곧 국제협력은 언제 시작됐을까?

1989년 바티칸에 세계 교회를 위한 봉헌금으로 미화 3000달러(당시 환율로 210만 원)를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1990년 필리핀에 지진 피해 복구 지원금 2156만여 원을 보내는 등 5건에 대한 원조로 국제협력을 본격화했고, 지난 2017년 말까지 전 세계 50여 개국 580개 사업에 276억 6762만여 원을 지원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원조의 씨앗을 뿌린 것은 1988년 5월이다. 당시 ‘원조 기금 관리 및 운영 방안’을 작성, 구호와 복지, 개발과 운동 등 네 가지 형태의 원조 활동을 구상했고, 기금 관리와 사용을 담당할 기구를 설립할 것을 제시했으며, 그 기구 산하에 원조심사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원조기금을 어떻게 사용할지의 문제는 초창기부터 계속 논의된 과제였다. 원칙적으로 아시아 지역 인간 발전사업에 사용하되 예외적으로 국내 원조를 위해서도 쓴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물론 기금 사용은 별도의 심의위원회 기준에 따라 이뤄지도록 했다.

이에 따라 1990년대에는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퇴치와 가톨릭교회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해 현지의 원조 요청에 대한 활동을 지원하는 단계였고, 최빈국과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를 위한 소규모 사업에 집중했다. 지원은 주로 베트남과 인도, 몽골, 동티모르,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집중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베트남에만 1992년부터 4년간 41만여 달러(4억 3000만여 원)를 지원, 베트남 교회의 재건과 기술 교육을 위한 자금과 기자재 전달에 주력했다. 이를 위한 원조 기금(평화 기금)은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 때 조성된 기금과 매년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모금하는 헌미헌금을 통해 마련됐다.

대북 지원을 시작한 것도 이즈음으로, 분단 50주년의 해인 1995년 북한에 대규모 큰물 피해가 발생하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는 북녘 동포들과 양식을 나누는 ‘한 줌의 쌀 나눔’에 동참해줄 것을 전 교구 공동체에 호소했고, 그해 6월 첫 주까지 봉헌된 헌미헌금은 한마음한몸운동본부로 보내져 대북 지원에 쓰였다. 이어 8월에도 북한 수재민 돕기 대북 쌀 모금 운동을 시행, 그해 9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4000만 원을 북에 전달했으며, 9월에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해외 원조 대상 지역에 북한을 포함해 대북 지원을 공식화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국제개발협력 활동은 확대일로를 걷게 된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분야의 지원 요청을 받게 되면서 관심과 지원을 높였고, 아시아 중심의 활동으로 사업 지원 방향을 정립해 나갔다. 재해재난에 대한 긴급구호 활동은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 태국, 이란 등에 집중됐고, 교회기관의 빈곤 퇴치 활동이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비정부기구(NGO)의 교육ㆍ보건의료 중심 사업 지원은 중국과 몽골, 중앙아시아 국가들, 인도, 케냐, 잠비아 등지에서 주로 이뤄졌다.

▲ 초창기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지원은 상당 부분 베트남에 집중됐다. 사진은 1993년 5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지원으로 개설된 한ㆍ베트남 직업훈련원에서 자동차 정비 교육을 받는 베트남 학생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국제개발협력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원조 기금이나 역량이 제한적이기에 집중지원 대상 국가를 선정하고 본부 지원금을 확대함으로써 사업의 효과성을 높이려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륙별 지원 전략을 모색, 아시아에 70∼80%, 아프리카ㆍ중남미 지역에 20∼30%씩 지원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캄보디아와 미얀마, 네팔, 파키스탄, 케냐, 부룬디 등 6개국을 중점 협력국가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와 공동체 중심의 활동으로 중장기적 지원 방향을 모색했고, 현지 교회 카리타스나 협력기관과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중심의 개발 방향으로 접근했다. 특히 효과적 사업 수행을 위해 소수 국가, 소수 사업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만 10년간 추진한 뒤 종료한 미얀마 방과 후 교사 훈련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현지 수도 교구인 양곤대교구와 함께 ‘피냐산예(Pyinya Sanyae)교육기관’이라는 이름의 교사 양성 학교를 통해 전문교사를 양성했고, 본부의 최대 지원 기간인 10년이 지난 뒤에는 피냐산예교육기관이 말레이시아 헬프(HELP)대학과 연계하는 학위 인정 과정이 되도록 함으로써 교사 양성 프로그램이 계속되도록 했다. 물론 그 뒤에도 미얀마 현지 교육과 청소년 교정, 지역 개발 등 4개 사업을 계속하면서 교회나 NGO와의 협력관계에 기반을 둔 지역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개도국이나 최빈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재해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구호를 시작으로 재건 복구, 재난 이전의 상태로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개발 협력 등 3단계 연계 전략도 쓰고 있다. 중남미 국가 중 지진으로 고통받는 아이티가 대표적인 나라다. 2010년 지진에 따른 긴급구호가 마무리되자 지금은 재건 복구 단계로 넘어간 상황이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또 본부 후원자들의 모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외부 기금을 활용하는 국제개발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국제개발협력단(KOICA)이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기업 등과 협력해 아시아 청년들이 중심이 되는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박재출(레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국제협력팀장은 “현지에 지부가 없으니까 저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좋은 협력자를 발굴해 그들과의 협력 동반관계를 통해 현지 문제를 주민들이 스스로 찾아내 변화를 만들어내고 해결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시적 원조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 지속 가능한 원조가 되도록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원 체계나 방향을 설정하고, 마을 단위의 개발 협력 활동을 하는 데도 원조의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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