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인터뷰] 차바우나 신부 "나부터 자살 유가족 위로해야"
관리자 | 2020-08-24 | 조회 659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차바우나 신부 /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전문]
가톨릭교회가 우리 사회 자살문제를 성찰하고 가톨릭 자살예방 매뉴얼을 새롭게 만들기로 했습니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장이신 차바우나 신부 연결해 자살을 줄이기 위해 교회의 노력과 계획 등에 관해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차바우나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코로나19 여파로 우려되는 사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자살입니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가 지난 4월하다 우리 사회의 자살문제를 성찰하고 또 대책을 모색하는 유튜브 대담을 해왔다는데 어떤 시간이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과거 IMF와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경제위기가 끝난 후에 더 오랜 기간 동안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을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습니다. 그것을 롱쉐도우라고 합니다. 긴 그림자라고 하죠.
그런데 경제위기가 꼭 자살하고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영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우울감, 무력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그리고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대비해서 지난 4월부터 매달 한 번씩 4번의 라이브 대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2018년부터 통계가 보면 하루 평균 자살자가 37.5명입니다. 이렇게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 자살 문제 자체를 터부시하고 피한다는 것은 그만큼 오해도 많고 두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라이브 대담을 통해서 자살 문제에 대한 오해점도 풀고 궁금한 것도 좀 풀고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질문들을 전문가들이 답해 주면서 소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10년째 자살예방 활동 해오고 있지 않습니까? 정부도 자살률 낮추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실효성이 부족한 탓인지 좀처럼 가시적인 변화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신부님께서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실제로 아까 말씀드린 IMF나 2008년 경제세계위기 때 올라갔던 자살률이 지금까지 아래로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이 된 게 2011년입니다.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자살이 사회문제가 된 일본도 연구를 많이 했고 실제로 성과를 많이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론 중에 하나가 일본의 자살은 서양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어떤 면에서 다른 건가요.
▶저희 문화적인 차이도 있고 환경적인 차이로 인해서 서양 쪽에서는 대증적인 요법이 우울증이 있으면 우울증을 치료해 주고 이런 것들이 효과를 거두었는데 실제로 우리는 그보다 이면에 있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적인 모델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역 사회가 함께 하는 모델들을 지금 제시를 꾸준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
▷교회가 자살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들도 나오던데요. 자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은 무엇이고 어떤 변화가 요청된다고 보십니까?
▶일단 자살에 대해서 우리 신자들께 여쭤보면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이 장례 미사 가능합니까.
▷그 말씀들 많이 여쭤보시더라고요.
▶그다음에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이 두 가지가.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장례미사는 교회법에서 명시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나는 하느님에 반대하기 위해서 자살하는 사람. 이런 사람 같은 경우에는 고려를 한다고 하지만 그 외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자살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마음대로 하는 죄이고 이웃과 연대를 파괴하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교회의 가르침은 변화가 있어야 되냐고 묻는다면 변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가르침은 맞기 때문에 그렇죠. 하지만 저희의 관점의 변화는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오른쪽에 십자가 오른쪽에 있던 우도라고 하죠. 강도였습니다. 모두가 죄인이라고 했지만 이 사람은 천국에 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함께 가자고 말씀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고 우리가 예수님께 불의하다고 따지겠습니까?
그 사람의 구원 문제는 하느님에게 맡겨진 몫이고 오히려 우리에게 맡겨진 몫은 그 강도가 그렇게 까지 될 때까지 왜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지 책임감을 느끼고 또 주변에 더 그런 이웃이 없는지 찾고 남겨진 가족을 위로하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맡겨진 몫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살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몫도 그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정말 책임감을 느끼고 다른 자살 위기자를 막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오히려 우리가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위로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의 앞으로 가야 될 방향성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낙인 찍고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고요. 지난 이틀간 자살예방교육도 실시한 걸로 아는데요.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 겁니까?
▶지난 이틀 동안 한 교육은 어시스트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살예방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서울대교구에 있는 경찰사목위원회 그다음에 교정사목위원회 그다음에 청소년 이동쉼터에 있는 아지트 그리고 의정부교구에 있는 선교사목국, 청소년사목국, 평신도협의회의 신부님들하고 실무자들이 함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자살자를 중심으로 유기적이고 통합된 사목 단점들을 발견하고 저희가 올해 가톨릭적인 자살예방교육을 준비 중인데 그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또 각자 사목 분야에서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저희가 발굴해 내고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그 준비로서 지난 이틀 동안 교육이 있었습니다.
▷유명인의 자살이 모방자살로 이어지는 걸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방을 위한 파파게노 효과도 있다고 하던데 이거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파파게노라는 인물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나오는 인물인데 그 인물이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이 사람에게 힘을 주고 말리기 위해서 악기들을 연주해 주고 하는 그걸 보고서 파파게노 효과, 자살을 막는 그런 베르테르 효과의 반대로서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어도 혼자 죽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주변에서 함께 해준다면 목숨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아까 말씀드린 대로 모든 죽은 사람들은 혼자 죽었습니다. 우리가 그걸 아신다면 파파게노 효과가 어떤 건지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또다시 코로나19 지역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이런 상황인데 앞으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 1인가구나 노인가구의 고립감 외로움이 커질 수밖에 없을 텐데 종교가 어떻게 역할을 하고 어떤 지원들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대증적인 요법 예를 들면 다쳤을 때는 약을 바르고 배가 아프면 이 약을 먹고 그게 바로 대증적 요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울함에는 우울함을 치료해 주고 경제적인 문제는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물론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살 문제하고는요. 그래서 오히려 주변, 이거를 지역 사회라고 하는, 그쪽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첫 번째로는 본당 안에서도 지역 자원들이라고 그래요. 구청이나 아니면 경찰서, 복지관 등등 그런 데서 어떻게 하면 힘든 사람들은 어느 쪽 연결해 줄 수 있고 우리도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준비해서 서로 연결해 주는 그러한 것들도 필요하고 그리고 함께 또 연대해서 돌봐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근본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에서 혹시 자살유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유가족 분들을 위해서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는 회관에서 미사와 함께 기도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또 자조모임, 함께하는 모임으로서 8회기 차로 모임의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끼리 또 모여서 서로 토닥여 주고 위로하고 하는 그런 자조모임도 있군요. 알겠습니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장이신 차바우나 신부님의 말씀 들었습니다. 신부님, 오늘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