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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한마음한몸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제3탄

admin | 2018-03-26 | 조회 1312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몸] (3)

생명운동 - 헌안ㆍ헌혈, 입양ㆍ결연 운동

출처 : 평화가톨릭신문 [1451호]  2018. 02. 04발행, 오세택 기자

기사 원문 바로가기 >>> https://bit.ly/2IHEbkm

▲ 2003년 6월 22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아 헌혈의 날 행사를 열고, 성체성사의 나눔 정신을 구현하는 뜻깊은 시간을 지내고 있는 서울대교구 가락동본당 신자들. 가톨릭평화신문 DB

▲ 지난 2005년 1월, 한마음한몸운동부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학생체육관 앞에서 한마음혈액원과 함께 헌혈ㆍ조혈모세포 기증 거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2005년 5월 김수환 추기경이 성가정입양원을 방문, 입양을 기다리는 한 아기를 어르고 있다.

1990년 1월 5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이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방문한 이유는 1988년 9월 2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첫 번째 공개 헌혈 당시에 안구 기증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당시 안은행장 김재호(프란치스코) 박사가 배석한 가운데 김 추기경은 자필로 안구 기증에 등록하고 생명 나눔 실천 의지를 드러냈다. 이 약속은 19년이 지나 2009년 2월 16일 김 추기경이 선종하는 순간 사후 각막 기증을 통해 두 사람에게 빛을 안겨주고 하느님 품으로 떠나면서 지켜졌다.

‘성체성사를 삶으로 사는 길’로서의 초창기 한마음한몸운동은 헌안ㆍ헌혈, 입양ㆍ결연, 헌미(헌금) 등 세 가지 실천 운동으로 구체화했고, 이 중 맨 먼저 시작된 건 헌안ㆍ헌혈 운동이었다.

우선 헌안ㆍ헌혈 운동은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태동했다. 그러나 1989년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를 전후한 시기까지도 ‘장기 밀매’가 횡행하고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에 ‘생명을 나누는 운동’으로 기존에 전개되던 헌안 운동 활성화에 교회가 발 벗고 나섰다.

김기준(비오) 전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그때 할 수 있는 게 헌안, 헌혈 운동밖에 없었어요. 다른 장기는 기증해도 쓰지 못하던 시절이었지요. 의술도, 사회적 인식도, 법적 뒷받침도 안 됐어요. 생체 이식은 문제가 너무 많아서 일차적으로 배제됐고, 시신 기증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래서 장기가 아니라 인체 조직 가운데 각막 이식을 위한 헌안 운동, 부족한 혈액 수급을 높이기 위한 헌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헌안ㆍ헌혈 운동은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출범 이후 헌혈ㆍ장기기증부에서 담당하다가 1990년 10월 15일 헌안헌혈부로 개칭하면서 본격화됐다.

특히 헌안 운동은 1990년에서 1993년 사이에 활발하게 추진됐다. 헌안 캠페인과 헌안 신청자ㆍ가족 모임, 학술회의 후원 등을 통해서였다. 1990년 6월 개최된 헌안과 각막 이식 수술 세미나ㆍ워크숍은 모든 가톨릭병원이 헌안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실명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헌안을 통한 참사랑을 실천하도록 하고자 계획한 것으로, 헌안에 대한 학술적 관심 이상을 불러일으켰다. 또 1991년 6월 450여 명의 헌안 신청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헌안 신청자와 그 가족들의 모임’은 헌안 신청에 대한 감사와 교육의 자리로 마련돼 헌안 운동이 확산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훗날 장기 기증자 봉헌의 날 행사로 이어지게 됐다. 서울대교구 내 전 본당을 대상으로 전개된 헌안 캠페인 또한 서울세계성체대회에 즈음해 시작돼 1989년에서 1993년 사이에 총 5482명이 헌안하기로 등록하고, 151명이 각막을 기증했으며, 118명이 각막 이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사는 성과를 거뒀다.

헌혈 운동은 당시 우리나라가 필요한 혈액의 3분의 2가량을 돈으로 사거나 외국에서 수입하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시도됐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혈액 수혈과 장기이식이 가능해졌지만, 혈액이 부족해 생명을 잃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생명 나눔’ 실천이었다.

이에 따라 1988년 9월 2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첫 번째 공개 헌혈이 실시돼 김 추기경이 안구 기증을 약속하고 주교단과 사제단, 수도자, 평신도 등 89명이 헌혈에 참여했으며, 이후 서울 세나뚜스 등 단체별 헌혈과 본당 순회 헌혈 캠페인이 이어지면서 그해 10월 16일 한국 성체대회가 끝난 직후에는 헌혈 봉헌자가 705명에 이르렀다.

1989년 5월 8일 세계 적십자의 날을 맞아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전국적 헌혈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7월 17일에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헌혈로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이라는 주제로 헌혈잔치를 열어 생명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교회 내적으로는 성찬의 신비를 되새겼고, 대사회적으로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헌혈잔치에는 5만 명이 참석, 우리나라 헌혈 역사상 최초로 4909명이 한꺼번에 채혈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후 1989년 4만 7303명, 1990년 1만 6218명 등 1993년까지 총 10만 4374명이 헌혈하는 신앙 실천의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교회의 전반적 헌혈 운동은 다소 저조하다. 연간 한두 차례 본당과 단체 헌혈로 맥이 이어지는데, 한마음혈액원과 중앙대 헌혈센터와 연계해 2016년에는 서울 서초동ㆍ우면동 본당에서, 지난해에는 서울 방배동본당에서 헌혈이 이뤄졌을 뿐이다. 하지만 헌혈증 기부는 꾸준히 이뤄져 2016년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헌혈증 445매가 모집됐다. 지난해에는 헌혈증 2031매가 모집돼 10명에게 2000매가 전달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교구 주보를 통한 헌혈증 기부 캠페인이 이뤄졌고, 성내동본당은 지난해 5월 헌혈증 120매를 기부하는 등 헌혈증 기부가 활발했다.

한편 입양ㆍ결연 운동은 1988년 당시 연간 1만 명이 넘는 어린 생명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이들 대부분이 외국으로 입양되는 ‘어둡고 부끄러운’ 현실을 자각하는 데서 비롯됐다. 많은 입양인이 겪어야 하는 파양(Rehome)과 아동 학대, 추방, 살해 등의 문제가 결국은 한국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한마음한몸운동의 실천 운동으로 승화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해 자신의 자식으로 키우고, 다른 가정에 입양되기 전에 임시 위탁을 받아 돌보며,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과 결연해 그들이 인간적 품위를 지키고 자라도록 하는 일은 생명을 나누는 또 다른 형태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입양ㆍ결연 운동이 펼쳐졌다.

한마음한몸운동의 입양ㆍ결연 운동은 1988년 9월 입양결연부가 만들어지면서 닻을 올렸다. 이어 그해 11월 서울 정릉에 입양 위탁시설인 성가정입양원이 임시 개원했고, 이 시설은 이듬해 5월 국내 입양 알선기관으로 인가를 받게 된다. 입양 운동은 국내 입양을 비롯해 일시 위탁인 사랑의 부모 운동, 결연 사업, 생명 수호 운동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전개됐으며, 결연 후원 또한 본당의 반ㆍ구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업은 입양결연부에서 담당하고, 아동들은 성가정입양원에 수용하고 보호하는 형태였다. 1989년 첫해 입양은 아동 104명 인수에 53명 입양, 결연은 단체 후원 61건에 개인 후원 1401명이 나서 202명이 수혜를 입은 것을 시작으로 1993년까지 5년간 입양은 541명을 입양하는 성과를 거뒀고, 결연은 단체후원 357건에 개인 후원 6346명, 수혜자는 1527명이나 됐다.

이같은 결실을 주도했던 입양결연부는 1993년 6월 28일 제31차 한마음한몸운동 추진위원회 결정에 따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로 이관됐다. 이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설립 취지에 맞게 위상을 재정비하려는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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