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한마음한몸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제2탄
admin | 2018-03-26 | 조회 5351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몸] (2)
한마음한몸운동이 걸어온 30년, 그 길과 발자취(하)
출처 : 평화가톨릭신문 [1448호] 2018. 01. 14발행,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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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의 신비를 삶으로 살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원래 ‘한시’ 조직이었다.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때까지만 존속하고, 이후 운영과 관리는 주교단의 지침에 따른다는 결정에 따라 설립됐다.
이 결정으로 1988년 10월 전국 본부가 만들어지고, 교구ㆍ본당 본부 조직이 정비됐으며, 전국협의회 연수회 등을 통해 한마음한몸운동 운영ㆍ파급 방안이 논의됐다.
특히 그해 10월 세계성체대회 예비대회 격으로 열린 한국 성체대회를 통해 성찬의 신비인 나눔을 실천하고 그 신비를 더욱 깊이 인식하며 나눔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한마음한몸운동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나아가 ‘성체성사를 삶으로 사는 길’로서의 한마음한몸운동은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의 정신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지속적 생활 운동으로 구체화했다. 그 모습은 헌혈ㆍ장기기증운동과 입양ㆍ결연운동, 헌미(헌금)운동으로 나타났으며, 아울러 한마음한몸운동 전반에 대한 심화교육과 함께 ‘사랑의 보청기 보내기’ ‘사랑의 도시락 보내기’ 등 캠페인도 뒤따랐다. 그래서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주교회의에서 한마음한몸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키로 한 ‘1988년 10월 10일’을 공식 설립일로 기념한다.
하지만 전국 조직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서울 세계성체대회 개최 직후인 1989년 10월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한마음한몸운동을 지속하되, 교구별로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한마음한몸운동 전국 본부는 해체됐고, 이후 한마음한몸운동은 교구별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 1989년 10월 개최된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는 성체 신심의 생활화, 특히 한국 교회가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세계 성체대회 당시 한국을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주교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 등 국내 주교단. 가톨릭평화신문 DB
▲ ‘나눔으로 하나 되어’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 성체대회는 한마음한몸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출발점이 됐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교회의 생활 실천 운동이자 범국민운동으로 추진’
전국 본부가 해체되고 교구별 운동을 지속하는 것으로 결정 나자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그해 11월 사제총회와 1990년 사목교서에서 한마음한몸운동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이어 1990년 1월 22일 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공식 재출범했고, 토론회와 세미나를 통해 당시 운동 성과를 돌아보고 앞으로 추진 원칙과 방향을 다시 모색했다. 한마음한몸운동을 모든 신자가 참여하는 교회 고유의 생활 실천 운동이자 범국민운동으로 승화하기 위해서였다.
한마음한몸운동에 대한 성찰과 방향 토론을 통해 먼저 그 이념이 드러났다. 역사 속에 신비로이 살아 계시고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믿고 현양함으로써 △세상 모든 인류가 온갖 종류의 장벽을 넘어 평화를 이룩하고 △회심과 나눔으로 형제적 일치를 이루도록 이바지하며 △나아가 자연계의 모든 피조물과도 화합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생활 쇄신 실천 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뒷날 한마음한몸운동의 전개 양상은 그 이념을 구현하는 긴 여정이었다. 기존 헌혈ㆍ장기기증운동과 입양ㆍ결연운동, 헌미(헌금)운동에서 1991년 4월 낙태 방지를 위한 참생명운동과 참생명학교 설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후 입양ㆍ결연 사업은 1993년 6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로 이관했다.
특히 생명 나눔은 2003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정과 함께 장기기증운동 활성화로 이어졌고, 헌미헌금운동은 ‘하루 100원 모으기 운동’으로 새롭게 변모했으며,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2010년에는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가 설립됐다.
시대적 요청에 응답한 30년 여정
‘시대성을 고려한 새로운 성찬의 삶’에 대한 요청이 일자 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당시 우리 사회의 당면한 문제 중 하나였던 환경 문제에 눈을 돌렸다. 특히 1991년 생활 실천 운동으로서 ‘아껴 쓰기, 나눠 쓰기, 덜 쓰기, 다시 쓰기’ 운동을 시작해 자원 재활용 사업, 특히 헌 옷 모으기 사업과 자동차 덜 타기 등 실천 운동을 전개했다.
아울러 1991년 6월 여러 종교계와 함께 창조질서 보전과 완성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 환경 문제를 종교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환경 보전 모임인 ‘하늘ㆍ땅ㆍ물을 살리는 벗들의 모임’을 통해 천주교 환경학교, 푸르름을 만드는 잔치, 천주교 어린이 자연학교, 환경 강연회ㆍ간담회 등 사업을 추진했다.
생활 실천 운동의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가톨릭농민회와 함께 ‘새생명공동체운동’을 추진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사안이다. 이 운동을 통해 하느님 창조질서 회복과 보전을 위한 ‘도농 직거래’가 틀을 갖추게 됐고, 훗날 1994년 6월 전국 규모의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국내외 원조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1988년 5월 한마음한몸운동의 하나로 헌미운동을 결정하면서 동시에 ‘원조 기금 관리와 운영 방안’을 마련, 국내외 원조활동의 씨를 뿌렸다. 서울 세계성체대회 때 조성된 기금과 매년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모금하는 헌미헌금으로 원조기금을 마련, 1990년 인간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우선 지원하면서 해외원조의 막이 올랐다.
이후 29년째 이어진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해외원조사업은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자연재해나 사목 협조, 인성 개발, 기술교육 등에 지원이 집중됐다. 1990년대 대표적 지원 사업으로는 1993년 5월에 지원한 ‘한ㆍ베트남 직업 훈련원 지원 사업’을 꼽을 수 있는데, 1992년에서 1995년까지 베트남 지원액만 41만여 달러(4억 3000만여 원)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선 재해 지역에 대한 긴급구호 활동과 함께 전 세계 50개국과 270억여 원에 달하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대북지원을 통해 민족 화해와 일치 운동의 밑거름이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분단과 광복 50주년의 해’를 맞아 갈라진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연대를 다지고자 1995년 3월 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교회 내 공식 기구로 발족시켰고, 민족 화해를 위한 기도와 교육, 북녘 형제들을 위한 나눔 활동을 펼치는 데 이바지했다.
이제 설립 30주년을 맞는 한마음한몸운동은 ‘성체 신심의 생활화’라는 신앙 실천 측면에서 새로운 과제에 대한 응답을 요청받고 있다. 그 시대적 징표에 대한 응답은 한마음한몸운동본부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천주교회,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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